바닥 1 - 동길산 (1960 ~ )
비는
위부터 적시지만
가장 많이 젖는 것은
바닥이다
피함도 없이
거부도 없이
모든 물기를 받아들인다
비에 젖지 않는 것은 없지만
바닥에 이르러 비로소 흥건히 젖는다
바닥은 늘 비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비를 바라보았으리라. 나름대로 비에서 무엇인가 이미지를, 또는 성찰을 얻었으리라. 이 시에서 건져낸 것은 ‘바닥’이다. 아마도 시인이 ‘바닥’의 살갗에 자기의 살갗을 오래도록 대고 있었던 까닭이 아닐까. ‘바닥’은 여기서 비의 이미지와 함께 살아 있는 몸이 된다. 그리고 시인의 살에 부딪혀 시선은 개화(開花)한다. 늘 비어 있는 바닥에의 정신의 부대낌, 모든 물기를 받아들이는 ‘바닥’의 포용심(包容心)을 시인은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늘 부딪히는 바닥이지만, 비와의 관계에서 그것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비의 의미망(意味網), ‘바닥’의 성스러움. 비어 있어야 다시 찰 수 있으리라. 그것이 어느 하루의 비일지라도. 어떤 사소함이며 누추함일지라도. 그런 다음 그 사소함, 누추함은 결코 사소함, 누추함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올 때 이런 재발견의 시선 하나 건져 보라. <강은교·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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