菽
菽
이 글자의 주인공은 콩이다. 요즘 웰빙식품으로 인기를 끌고는 있으나 문자(文字) 세상에서 콩이 받았던 대우는 시원찮았다.
그 대표적인 용례가 콩인지, 보리인지를 가리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숙맥불변(菽麥不辨)’이다. 콩과 보리가 엄연히 다른데도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입말에서는 된소리인 ‘쑥맥’이 자주 쓰이지만 바른 발음은 ‘숙맥’이다.
이 글자는 요즘의 한자문화권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쓰이는 한자는 두(豆)다. 황두(黃豆)와 대두(大豆), 녹두(綠豆)·완두(豌豆) 등이다. 그러나 이 글자가 처음부터 콩을 지칭했던 것은 아니다.
두는 일종의 제기(祭器)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완연한 그릇이다. 밑 부분이 받침대, 네모에다가 횡(橫)으로 그은 금이 음식을 올려 두는 부분이다. 이 그릇 위에 수확한 물건을 잔뜩 올려 둔 모습이 풍(豐)이다. 요즘엔 약자인 풍(豊)이라는 글자가 널리 쓰이지만 원래의 글자를 보면 풍년(豊年)의 풍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유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기로서의 두와 함께 자주 쓰였던 글자가 조(俎)다. 고기와 생선을 올려놓고 칼질을 하는 ‘도마’라는 새김도 있지만, 원래 뜻은 두와 마찬가지로 제사 용기(用器)다. 따라서 조두지사(俎豆之事)라고 적었을 때는 제사를 일컫는다. 제사 용기였던 두가 어째서 콩이라는 새김을 얻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대(古代) 중국에서 두 글자의 음이 비슷해 어느 땐가 섞이기 시작해 쓰였다는 추정이 있다.
왜 콩 타령인가. 타블로라는 가수의 학력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네티즌이 생각나서다. 광우병 쇠고기, 천안함 사건에서도 객관적인 사실을 외면해 온 일부 네티즌의 파행(跛行)적인 인식 형태의 연장이다.
콩가루는 잘 뭉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면 가족 구성원들이 따로 노는 형편없는 가정을 가리킨다. ‘콩’과 ‘보리’를 의도적으로 구별하지 않거나, 혹은 그런 능력이 없는 네티즌 때문에 나라꼴이 콩가루처럼 비치지 않을까 걱정이다.-중앙일보-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