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반응, 정신적 반응
육체적 반응, 정신적 반응
곽대희의 性칼럼
현대과학에 심취한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물리학적 이론을 근거로 해석하려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육체적 자극의 양과 그 시간에 비례해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이 순진한 처녀를 파트너로 맞으면 십중팔구 낭패를 보게 된다.
여성은 애무를 받으면 여러 가지 신체적 반응을 보인다. 유두는 남성의 흥분한 페니스처럼 발기하고, 음부를 애무하면 질과 외음부가 촉촉하게 젖는다. 여성의 성반응은 이처럼 기계적 면모가 물씬하다. 바로 이런 생리적 반응을 보고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의 성심리도 배려하지 않은 채 오직 육체적 자극에만 열중한다. 그러나 여성의 오르가슴은 물리적 자극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사정하는 것으로 섹스가 끝나버리는 남성과 달리 섹스 뒤 따라오는 수태와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부담 때문에 남성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섹스를 수용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는다. 즉 성심리라는 또 하나의 단계가 있는 것이다. 남녀간의 육체적 절정은 마음과 몸의 융합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성의 성반응은 어떠한가. 남성의 오르가슴은 여성에 비해 화려하지도, 폭발적이지도 않다. 상대방에게 성취감을 안겨주는 심리적 요소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르가슴에 대뇌의 작용이 여성만큼 깊이 간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오르가슴은 접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개시되고, 그 정점에서 대뇌가 비로소 동원되지만 남성의 경우는 그 이전에 이미 대뇌가 분주하게 작용한다. 여성의 날씬한 몸매를 상상하고, 유방과 둔부의 에로틱한 곡선을 생각하면서 남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킨다. 말하자면 삽입하기도 전에 남성은 벌써 흥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남성의 대뇌를 사용하는 방식인 것이다.
여성은 남성이 스트립 쇼를 관람하거나 여자가 속옷을 벗는 장면을 훔쳐보는 성충동을 좀체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이 남성의 성심리를 이해 못하듯, 남성 또한 여성이 대뇌를 써서 오르가슴을 팽창시키는 생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어떤 남성도 여성에게 이상적 남성으로 어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섹스에 있어 정신과 육체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다.
첫째, 반응(reaction)의 메커니즘이다. 자극은 먼저 뇌에 전달되고 거기서 상황을 분석한 다음 질이나 항문을 수축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쾌감신경은 먼저 시상하부의 성중추에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대뇌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정신작용을 관장하는 전두엽(前頭葉)으로 성적 자극이 전달된다. 성적으로 흥분했으니 질구를 수축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지는 것은 상기한 신경회로의 전달이 종료된 뒤의 일이므로 이 시점에서 이미 육체적 반응과 정신적 반응은 동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육체의 오르가슴에는 마음의 협조가 필요하다. 뇌에서 시상하부·전두엽에 이르는 신경전달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섹스에 관계된 신체적 반응은 부드럽게 진행될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육체적 접근보다 달콤한 애무와 밀어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여성의 오르가슴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대뇌와 성기가 잘 조화돼야 한다. 그러자면 애정 어린 말이나 점잖고 세련된 태도가 남성에게 필수적이다.
원래 인류의 여명기에 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성의 비호 아래 자식을 양육하고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무기로서 개발된 것이므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할 때 여성은 마음의 문을 열고 비로소 오르가슴의 불씨를 피운다. (중앙일보 조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