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暇
休暇
“천하가 어지러이 싸움만 일삼으니(天下紛紛事鬪爭), 백성들은 어느 날 태평 세월 만나리오(黎民何日見昇平). 물에 잠긴 안개 속의 초가집 고요한데(水沈煙裏芧堂靜), 때때로 등불 돋우며 제갈공명을 그리워하네(時復挑燈憶孔明).”
“우연한 휴가로 한가한 틈 잠시 타서(偶緣休沐暫偸閒), 서재를 잘 치우고 푸르른 산 대했더니(靜掃書齋對碧山), 아마도 봄 소식이 왔나 보네(知有東君消息至), 창 너머 산새들이 조잘대고 있네 그려(隔窓幽鳥語間關).”
앞의 시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의 문신 김제안(金齊顔, ?~1368)이 지은 ‘휴가(休暇)’, 뒤의 시는 조선 중기의 문장가 신흠(申欽, 1566~1628)의 ‘휴목(休沐)’이다. 복잡 다난한 서울을 떠나 호젓한 시골에서 한가로움을 만끽하는 선비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성은으로 휴가 내려와 편안히 잠을 자고(聖恩休沐得安眠), 동창에 해 오를제 초라하게 앉았노니(日上東窓坐聳肩), 책 쌓인 서재에 들어 노년을 기다리니(萬卷開堂期晚歲), 이른 새벽 입조를 기다리던 예전이 생각나네(五更待漏憶當年), 비밀스러운 옥룡서는 제자들이 의탁하고(玉龍書祕憑諸子), 높다란 한림원엔 뭇 현인이 모였네(金馬門高集衆賢), 나는 승방 빌려 반 걸상에 나눠 앉아서(欲乞僧房分半榻), 흰 구름 쌓인 속에서 폭포 소리를 듣고 싶구나(白雲堆裏聽飛泉).”
고려말의 대문장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휴가를 얻어 스스로 읊다(休暇自詠)’라는 시의 첫 수다.
곧 휴가철이다. 과거에는 관리들의 휴가를 휴목이라 했다. 중국 한(漢)나라 시절 법률로 벼슬아치들에게 닷새에 하루, 당(唐)나라는 열흘에 하루씩 집에서 쉬며 목욕할 수 있도록 한 데서 유래했다.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쉬게 하는 것은 휴양(休養), 휴가를 신청하는 것을 휴고(休告)라 했다. 『시경(詩經)』에도 ‘백성들이 고생에 지쳐 있으니 조금은 쉬게 해야 한다(民亦勞止 汔可小休)’라고 노래했다. 쉴 휴(休)란 한자가 본디 나무(木)에 사람(人)이 기대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이 휴가를 얻으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책을 벗삼아 지냈나 보다. -중앙일보-